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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의 뷰스] 묶인 사람과 묶인 개의 결정적 차이

묶여있는 개 같은 무력감 몰려올 때 떠올리는 ‘이성적 주체성’

  • 기사입력 2024.08.20 15:40
  • 기자명 신아연 객원기자

더피알=신아연 객원기자 |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일 수 있다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인생의 풍파도 너끈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힘으로 어떤 사건이나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 해도,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 자세와 태도는 우리 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여기 사람과 개가 묶여있다.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둘 다 절망적이라 해도 둘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게 무엇일까. 사람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구체적으로 ‘이성’이 있지만 개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결정적 차이다.

개는 묶여있는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뿐, 고통에 처한 인과를 인식할 수 없고, 따라서 앞일에 대처할 수 없다. 외부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는 한 고통은 지속된다.

그러나 사람은 개와 다를 바 없이 고통에 처했다 해도 그 자체를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성을 작동하여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거나, 이도 저도 해결책이 없다면 역시 이성적 판단에 의해 고통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선택’한다.

그럴 때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더는 그를 옥죌 수 없다. 십자가 고통을 담당한 예수처럼.

이처럼 인간은 역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와 역경을 껴안아 버리는 자유, 두 가지 자유를 가진 존재다. 그리고 그 자유는 ‘이성’에 의해 발현된다. 그것이 곧 주체성이자 주체적인 삶을 사는 태도다.

요즘 유행하는 “내 맘대로 산다, 내 뜻대로 산다, 나답게 산다”는 말이 언뜻 듣기엔 주체적이며 자유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이성적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극단적으로는 ‘그저 나 하고 싶은대로 살겠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과연 얼마나 깊은 생각과 고뇌의 시간을 견뎠으며, 어쩌지 못하는 견고한 환경과 그 거대한 벽을 마주한 나 사이에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자유 중 어떤 자유를 결단했는가.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 머리조차 그다지 좋지 않은 것,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취업전선에서 매번 낙방하고,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못하는 등등 우리 삶에는 한숨짓고 눈물 흘릴 일투성이다.

그러나 묶여있는 개와 다를 바 없는 무력감이 몰려올 때, ‘이성적 주체성’을 떠올릴 일이다.

환경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 어떤 환경도 인간의 이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 환경을 그대로 받아 안겠다는 데야 누가, 어떻게 말리랴. 그런 각오로 앞날을 도모해야 한다. 한 발 한 발 내디뎌 보는 것이다. 그것이 곧 주체적인 삶이다.

고통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선택’할 때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더는 그를 옥죌 수 없다.
고통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선택’할 때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더는 그를 옥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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