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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로컬에게 ‘넥스트’를, 청년에겐 창업의 꿈을

[서울×지역×청년, ‘넥스트로컬’ ①]

16개월간 진행되는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벌써 5기째
서울시가 청년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데 예산을 쓰는 이유
수도권 인구밀집과 소멸위험지역 활성화 함께 해결

  • 기사입력 2023.09.11 08:00
  • 최종수정 2023.09.12 09:58
  • 기자명 김민지, 김병주 기자

더피알=김병주·김민지 기자 | “이 동네에는 사람이 안 와.”

인구가 감소하고 청년 유입이 줄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118곳(52%)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고령화, 저출산, 수도권 쏠림 현상 등 선진국이 겪는 문제가 겹겹이 쌓여 나타난 결과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들은 상권이 살아나는데 성공한 지역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양양의 서피비치, 강릉의 카페거리 등 로컬 콘텐츠가 있는 지역에는 관광객 유입이 많아지면서 체류 인구도 늘었다. 로컬 콘텐츠의 필요성을 감지한 지자체는 지역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콘텐츠를 발굴해 줄 젊은 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소멸을 걱정하는 지역, 인구 밀집을 해결하려는 서울, 취업 경쟁에서 벗어나 창업을 도전하려는 청년, 이 세 집단을 모두 만족시키는 로컬 크리에이터 공급 사업 ‘넥스트로컬’을 소개한다.

‘맨땅에 헤딩’ 로컬 창업을 도와주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지방 지역과 협업해 청년 로컬 창업 지원사업 ‘넥스트로컬’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소멸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서울 청년들을 로컬로 보내 지역 자원 활용 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넥스트로컬은 창업을 꿈꾸지만 어떻게 할지는 막막한 서울 청년들에게 총 16개월간 단계별 활동 및 자금을 지원한다. 총 세 단계로 진행되는데, 첫 두 달은 지역에 내려가 자원을 조사하고 다섯 달 동안 사업을 본격화한다. 이후 후속 지원을 9개월간 받을 수 있다.

올해 7월 시작된 5기의 경우 총 60팀을 선발해 자원 조사부터 시작했다. 2단계 사업화 과정에서 60팀이 30팀 내외로 추려지고 최종 15팀이 후속 지원을 받는다.

지난해 선발된 4기는 사업화에 성공한 42팀이 66종의 상품을 개발했고 15회의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 6개월간 총 3억6백만 원의 매출을 거둬들이고 3억 원 상당의 투자 유치를 이뤄냈다.

2023년 7월 4일 넥스트로컬 5기 발대식으로 시작으로 본격적인 5기 활동이 시작됐다.
2023년 7월 4일 발대식을 시작으로 넥스트로컬 5기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진=넥스트로컬 제공

식품, 문화관광, 교육 등 다양한 유형의 로컬 창업가를 선발하는데, 크게 ‘By Local·자원활용형’, ‘In Local·지역기반형’, ‘With Local·지역해결형’으로 서비스가 나눠진다.

자원활용형은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해 지역 내 외 서비스를 개발하는 비즈니스 형태다. 고창 검정보리신품종 흑다향보리로 제작한 커피 대체 음료가 그 사례다.

지역기반형은 지역 내 서비스 제공을 위해 로컬에서 직접 공간을 구성하는 형태다. 경남 고성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재택 근무 ‘워케이션’을 런칭한 경우다.

지역해결형은 지역 내 문제 해결 관점으로 다가가는 비즈니스다. 통영의 굴패각으로 액상형 제설제를 개발해 굴패각 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했다.

넥스트로컬 5기 사업 진행 과정. 사진=넥스트로컬 홈페이지
넥스트로컬 5기 사업 진행 과정. 사진=넥스트로컬 홈페이지

지역 자원을 조사하는 첫 두 달은 지역을 방문해 현황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다. 크리에이터 혼자 가설을 세워 사업 설계를 할 경우 실패할 요소가 많다.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는 농가가 얼마나 되는지, 그 농가에 얼마의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현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탐구할 수 있도록 서울시와 지자체가 지역 네트워킹 자리를 마련해준다. 4기의 경우 20개 지역을 203명의 청년 창업가가 조사한 시간을 모두 합치면 2592일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인 사업화 과정에 돌입하는데, 사업 지식이 부족한 청년을 위해 일대일 코칭으로 사업 모델 구현을 함께 고민한다.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기획자의 시선만이 아닌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고객 관점에서는 얼마나 매력적이고 신선한 상품인지, 지역 관점에서는 서로 윈윈(win-win)하는 계약을 맺을 수 있는지 여러 관계자의 시선을 이해한다. 이 접근 방식을 코치가 일대일로 교육하고, 선배 창업가의 특강과 지자체와의 만남으로 기획을 구체화한다.

후속 지원 단계에서는 사업 지속 가능성이 있는 최종 15팀 내외가 선정된다. 런칭 후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존 단계보다 더 큰 금액의 자금을 지원받는다.

자금 외에도 창업가들이 고민하는 홍보와 사업 확장도 교육과 간담회로 지원한다. 소비자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박람회를 열어 홍보의 장을 제공하고, 투자대회를 열어 상품 평가로 비즈니스 경쟁력을 고취시킨다.

로컬 창업은 일반 비즈니스와 다르게 여러 집단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지역 주민이 협조해 주지 않거나 상품성을 잘못 선정하면 지역 연계성을 잃기 마련이다. 넥스트로컬은 창업가들이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주까진 바라지도 않아”…시작은 ‘생활인구’부터

지방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놓이면서 대응책을 찾아 나섰다. 이전에는 외부 인구를 지방에 이주시켜 정착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지방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바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대신 올해부터 정부에서 추진하는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생활인구는 거주지에 기반한 인구 개념을 벗어나 지역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는 인구 개념을 말한다. 이주나 정착의 형식이 아니어도 관광이나 업무 등 다른 목적으로 특정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인구다.

넥스트로컬 사업과 처음부터 함께한 서울시 대외협력과 백경진 주무관도 지방과의 상생에서 ‘생활인구’를 언급했다.

“지방으로 이주하거나 정착하는 걸 유도하기엔 삶의 환경이 한 번에 급변하는 거잖아요. 체류나 이주 같은 무거운 접근보단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젊은이들이 지역에 오가면서 창업에 나서는 접근이 더 적절하겠더라고요.”

백 주무관이 청년들의 활동으로 지역에 활력을 주고, 2~3년 뒤 지역에 로컬 브랜드의 본사나 지사를 설립하는 등의 실제 예시를 여럿 지켜본 결과다.

5기 발대식에서는 이전 기수 상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했다. 사진=넥스트로컬 제공

청년 하나하나가 지역을 알리는 상품을 개발해 브랜딩에 나서는 작업은 지역과 청년 입장에서 모두 환영하는 실용적인 상생의 선택지다.

강진 도시재생센터 장미 센터장도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넥스트로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전남 강진은 오랫동안 쇠퇴한 지역이기 때문에 외부 자원과 인력 유입이 필요했다. 청년들에게 인기를 끌 콘텐츠를 제작해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걸음을 잇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 활성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에 애정을 갖고 새로운 시각으로, 창의적으로 해석해 줄 크리에이터들을 필요로 했다. 강진의 상징 고려청자를 현대 관점에서 대중화하는 것, 농가 체험을 홍보하는 것 등으로 지역 정체성을 살리길 바랐고, 넥스트로컬이 그 길 문을 열어줬다.

서울시는 왜 청년들을 지방으로 보내는가

로컬에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이 사업은 본래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청년을 외부로 보내는 것이 서울시 입장에서는 무슨 이익이 되는 걸까?

서울시는 지방과 정반대로 인구 집중과 일자리 경쟁 심화의 문제를 안고 있다. 2019년 기준 수도권 인구는 전체의 50%를 넘어섰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 대비 11.8% 밖에 되지 않은 곳에 과반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인구 포화는 사람 간 경쟁까지 이어지면서 삶의 질을 저하시켰다. 서울시는 수도권과 지방 상생에서 해법을 찾았다.

넥스트로컬 사업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는 2018년 ‘3선 서울시장의 세 가지 숙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숙제 중 하나로 서울과 지방의 상생이 언급됐다.

핵심은 서울과 지방의 인적·물적·정보 교류다. 2019년 5월 서울시는 29개 기초자치단체와 함께 ‘서울-지방 상생’을 선언하고 그 실현 전략으로 서울시 지역 상생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4년간 2403억 원의 예산을 마련해 36개 사업으로 사람, 정보, 물자 3개 분야를 서울과 지방이 나누는 것을 목표로 했다. 넥스트로컬이 그 목표의 일환이다.

5기 발대식 팝업 전시 현장. 사진=넥스트로컬 제공

마침 청년 일자리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청년 세대는 큰 회사에 매여 살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길 원한다.

창업 수요가 커지고, 삶의 공간을 서울이라는 대도시 바깥으로 넓히려는 젊은이들을 트렌디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넥스트로컬이다. 청년의 일자리 경쟁 과열을 넘어 로컬로 시선을 돌릴 기회를 청년에게 주는 것이 서울시의 목표다.

일각에서는 왜 서울 청년들을 타지역에 보내는 데에 서울시 예산을 쓰냐는 의견이 나오는데  정석 교수는 “서울시가 서울 청년들의 미래를 준비하게 돕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청년의 미래에는 취업 외에 창업도 있고, 그 무대는 서울일 수도, 지방일 수도, 세계일 수도 있다. 높은 비용에 시달리며 처음부터 대도시에서 창업하는 선택지 외에도 더 적절한 조건을 갖춘 로컬에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정 교수는 “서울시가 가장 소중한 인재인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지, 그 장소가 어디인지만을 따지는 것은 사업 취지를 너무 좁게 본 것”이라고 넥스트로컬 사업의 취지를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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