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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대전의 전면에 선 걸그룹과 관전 포인트

[박재항의 캠페인 인사이트]
뉴진스-아이브 맞대결…그 앞에 2NE1과 체리필터가 있었다

  • 기사입력 2023.09.18 08:00
  • 최종수정 2023.09.18 09:39
  • 기자명 박재항
8월 11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K-Pop 슈퍼 라이브'에서 공연하는 뉴진스 

더피알=박재항 | ‘뉴진스’와 ‘아이브’의 공통점은?

답이 너무 뻔하면서도 막연한 질문 같다. ‘K-팝을 대표하는 걸그룹’이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이겠다. 더 자세하게 들어간다면 대한민국 출신이 아닌 멤버들도 있어 다국적이고, 데뷔한 지 2년이 채 안 된 비교적 신생 그룹이라는 점, 멤버들의 나이도 아이브는 출생연도가 2002년에서 2007년, 뉴진스는 2004년에서 2008년 사이로 어린 편이라는 게 공통점으로 언급될 수 있겠다.

사상 최고의 무더위에 태풍까지 들이닥쳐 시끄러웠던 2023년 8월에는 그들이 함께 어울렸던 무대도 있었다. 8월 11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K-Pop 슈퍼 라이브’라고 이름 붙인 공연이었다.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가 더위와 태풍, 무엇보다 준비 부족으로 원래의 장소를 떠나 대원들이 각지로 흩어지는 파행 진행 속에 급조된 공연이었다.

공연 이틀 전인 8월 9일 발표한 출연 그룹에 뉴진스는 있었으나, 아이브는 일정 때문에 출연할 수 없다며 빠져 있었다. 그랬다가 하루 전인 10일에 아이브가 공연에 합류한다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발표하면서 ‘자발적’인 결정임을 강조하여 괜한 구설수에 올랐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는 몰라도 그날 공교롭게 금융감독원에서는 아이브 소속사 모회사 창업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어쨌든 두 그룹이 그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것도 공통점의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아이브.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공연을 펼치는 아이브.

인기에 어울리게 두 그룹 모두 그룹 단위나 멤버 각각으로 광고 활동이 활발하다. 두 그룹 모두 20개 이상 기업이나 브랜드의 광고 모델, 홍보대사 등으로 숨 가쁘게 뛰고 있다.

특히 아이브 안유진은 저녁에 레몬진 소주를 마시고, 아침에 옥수수수염차로 속을 달래고, 점심에 펩시콜라를 마신다며, 최고 인기 광고 모델을 소재로 한 ‘000의 일상’ 식의 농담에서 음료로만 틈새시장을 만들며 등장하기도 했다.

다양한 업종에서 두 그룹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다 보니, 경쟁사나 브랜드의 대표 얼굴로 나서며 광고 첨병으로서 대결을 벌이는 경우도 나타난다. 특히 기업의 라이벌 대결이 의도하든 아니든 광고에도 반영되어 고스란히 옮겨진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대담한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뉴진스는 2023년 4월 3일 코카콜라의 코크 스튜디오(Coke Studio)와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을 첫 장면에 알리는 뮤비와 더불어 싱글 '제로'(Zero)를 발표했다. 게다가 보통 ‘척척박사’라고 하는 1970년대부터 어린이들이 뭔가 선택할 때 즐겨 부른 속요(俗謠)에 나오는 ‘코카콜라 맛있다’는 가사를 그대로 노랫말에 담아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 싱글은 지니(Genie)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공식 뮤비 조회수는 1700만 회를 훌쩍 넘겼다. 그런 인기를 등에 업고, 아니 사실은 정해진 수순으로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미국 애틀랜타 출신의 유명 래퍼 제이아이디(J.I.D.)와 함께 '제로' 리믹스 버전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고, 제이아이디는 8월 21일 내한공연을 했다.

뉴진스는 4월 3일 코카콜라 CM송 '제로'(Zero)를 발표했다.
뉴진스는 4월 3일 코카콜라 CM송 '제로'(Zero)를 발표했다.

공식 음원 싱글에서 제품 브랜드명을 직접 언급했으니, 그걸 광고에 쓰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싱글 발표와 광고 공개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한국 최고의 광고 오디오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강재덕 더라임라이트뮤직컨설팅 대표도 “예전에는 브랜디드 콘텐츠 음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서, 싱글 발매를 먼저 하고 광고가 뒤를 이어가는 상황”이었다며, 이번 뉴진스의 코카콜라 제로 광고는 파격적이라고 평가했다.

걸그룹을 전면에 내세우며 음원을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역사에 남은 광고가 있었다. 지난 2년간 대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하면서,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중학생 이전 어린 시절에 본 기억에 남는 광고를 물어봤다.

학생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대략 2015년 이전 광고물을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 같은 형식이 되었는데, 압도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꼽은 게 2009년의 LG전자 휴대폰 싸이언(Cyon)의 ‘롤리팝’ 광고였다. 대학생보다 나이 든 30대에서 50대 후반 사람들에게 이 결과를 얘기해도 모두 이 광고를 기억하고 있었고, 대학생들의 선정에 공감한다고 했다.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2009년 당시 비교적 신생 보이그룹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빅뱅에, 그들보다 더 앳된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이 함께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화려했던 빅뱅에 전혀 밀리지 않고 완전 신인이었던 걸그룹에 오히려 조명이 집중되었다. 빅뱅과 같은 기획사 YG 소속으로 4년간 연습생 시절을 거쳐, 청소년과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화려한 휴대폰 시리즈 광고로 선을 보인 그 걸그룹은 2NE1이었다.

일부 CM송으로 쓰인 노래의 원곡은 음원 차트 1위에 올랐고, 2NE1은 일거에 최고의 걸그룹으로 발돋움했다. 3분 이상의 원곡 뮤직비디오 일부가 광고로 쓰였는데, 원곡과 CM송, 3분 이상의 뮤비와 15초 광고 중 무엇이 차트 1위에 오르고 걸그룹이 인기를 끄는 데 더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롤리팝과 코카콜라 제로 광고의 공통점 몇 가지를 추릴 수 있다.

- 걸그룹이 출연한 광고다.

- 발표된 정식 싱글의 일부가 CM송으로 활용되었다.

- 그렇게 발표된 노래가 음원 차트 1위를 했다.

- 휴대폰과 제로콜라라는 카테고리에서 두 브랜드 모두 후발주자였다.

휴대폰 시장에서 당시 LG싸이언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삼성 애니콜에 크게 뒤진 브랜드였다. 코카콜라도 기업 브랜드나 콜라 전체에서는 펩시에 앞선다고 해도, 제로콜라 부문에서는 펩시가 먼저 치고 나가 뒤지고 있었다.

그래서 롤리팝이나 코카콜라 제로나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압도적인 1위가 있는 상황이고, 물리적인 차별점을 뚜렷하게 각인시키기 힘든 후발주자는 표현이나 실행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뉴진스의 코카콜라 제로 홍보 이미지.

물론 걸그룹 판도의 변화와 약 15년의 시간 간격을 반영한 듯한 차이점도 있다.

​- 롤리팝의 2NE1은 이미 인기 절정이었던 보이그룹 빅뱅과 함께 출연했다. 생짜 신인 걸그룹 2NE1 하나로는 불안했던 것 같다. 반면에 뉴진스는 이미 데뷔 앨범으로 각국 차트 1위를 차지한 정상의 걸그룹이다.

- 대상 시장의 영역에 차이가 있다. 롤리팝은 한국 시장과 고객만을 대상으로 했던 데 비해 코카콜라 제로는 글로벌까지 시야에 넣고 진행했다. 코카콜라 자체가 글로벌 브랜드로서 위상에서 압도적이고, 이번 광고와 노래도 세계 곳곳에서 화제가 되었다.

​- 롤리팝 광고에서는 대상 품목인 휴대폰의 성능 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색깔은 레인보우’, ‘내 스탈’, ‘반짝반짝 스타' 등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의 일부 가사를 따서 쓰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뉴진스의 '제로'에서는 ‘코카콜라 맛있다’라고 한 후에 ‘제로니까’라고 덧붙이고, ‘스윗함은 그대로/ 불안감은 제로’에 이어 마지막에는 ‘맛있으면 또 먹어’라고 바로 구매에 나서도록 방점을 찍는다.

​- 전통 음악 시장에 나온 롤리팝 뮤비에서는 제품의 노출이 없다. 광고에서만 뮤비에서의 몇몇 장면에 휴대폰 롤리팝을 빅뱅과 2NE1 멤버들이 들고 나오는 것으로 화면을 바꾸었다. '제로'에서는 뮤비 처음에 코크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밝히며 시작해 냉장고에 가득 찬 캔들과 직접 마시는 장면까지 나온다.

- 2009년 2NE1과 빅뱅의 롤리팝은 상업 음악이 먼저였고, 광고는 다음이었다. 2023년 뉴진스의 '제로'는 광고와 상업 음악의 경계선이 없어졌다.

뉴진스의 코카콜라 제로 광고가 나오면서부터 펩시가 어떤 식으로 반격할지 궁금했다. 원래 아이브가 펩시 모델로 활동했는데, 펩시라는 브랜드를 어떤 형식으로, 얼마만큼 노출할 것인가가 포인트였다.

7월 13일 공개된 아이브의 신곡 '아이 원트'(I WANT).
7월 13일 공개된 아이브의 신곡 '아이 원트'(I WANT).

뉴진스의 코카콜라 제로 광고가 등장하고 3개월이 지난 7월 13일 아이브는 ‘아이 원트'(I WANT)라는 신곡을 공개했다. ‘2023 펩시 캠페인’이 주인공이라는 펩시콜라와 아이브 측의 말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펩시 로고와 메시지가 다양한 장소에서 형태를 달리하여 화면을 메웠다.

코크 스튜디오에서 제작했음을 알리는 것처럼, 펩시 로고가 뮤비의 첫 화면에 뜬다. 아이브의 모든 멤버는 펩시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그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지하철 차량 내부의 디지털 안내판에 펩시의 광고 문구가 나오고, 도심의 옥외광고들도 온통 펩시 광고로 채워져 있다. 펩시콜라로 채워진 쇼케이스 냉장고들이 수시로 배경으로 나오고, 문을 열고 펩시콜라를 꺼내서 먹는 장면도 나온다. 아이브의 무대에 열광하는 관객들도 모두 펩시콜라를 마시고 있다. 펩시가 시각적으로는 그렇게 범람하지만, 놀랍게도 펩시라는 브랜드명은 언급하지 않는다.

싱글 발매와 광고 음악의 기존 순서에 변화가 왔다고 했던 강재덕 대표는 “브랜드명을 직접 노출한 노래는 음원 서비스 플랫폼에서도 많은 부담을 느껴 서비스하는 데 제한이 많았고, 가요 심의나 뮤비 심의에서도 문제가 되어 브랜드의 콘셉트를 은유적인 가사나 다른 표현으로 치환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전부터 세간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를 그대로 따왔다고 하더라도, ‘코카콜라 맛있다’와 같은 가사를 노골적으로 쓸 수 있는 이유로 강 대표는 K-팝이 글로벌 무대에서 각광받으면서 K-팝 뮤지션들의 파워가 커진 사실도 든다.

상대적으로 심의의 칼날이 둔해졌다는 말로도 들린다. 정부를 비롯한 공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문화계의 힘이 강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잼버리 구하기’에 뉴진스나 아이브가 ‘자발적으로’ 차출되고, 결국 그들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현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묘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브랜드명을 가사에 넣고 시종일관 제품과 로고를 노출하는 뮤비에서 보듯,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원래 발언과는 다른 영역에서 실감난다. 시장의 메시지가 음악의 작품성을 압도하는 듯한 양상이다.

뉴진스(좌)와 아이브(우)의 라이벌 대결은 브랜디드 콘텐츠의 파급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뉴진스(좌)와 아이브(우)의 라이벌 대결은 브랜디드 콘텐츠의 파급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작년 10월 프로야구 이대호 선수의 은퇴식에서 멋진 무대를 장식했던 밴드 체리필터는 2007년에 ‘느껴봐’라는 곡을 발표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느껴봐’라고 외치는 이 노래가 코카콜라의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s)로 기획되어, 강 대표가 진행했다는 사실을 뉴진스와 아이브가 전면에 나선 펩시와 코카콜라의 이번 싸움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과연 브랜디드 콘텐츠에서의 브랜드 노출은 어느 수준까지 나아갈까? 콜라로 시작된 최고 전통의 브랜드 라이벌 대결이 어떻게 진행될까? 당사자인 두 걸그룹과 나아가 K-팝의 판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번 새로운 형태의 콜라 대전은 흥미롭게 지켜볼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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