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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인 줄 알았지' 해태가 넓혀가는 '바밤양갱' 유니버스

[박재항의 캠페인 인사이트] 만우절과 브랜드 ‘해태’의 여정

식음료 이름·모양 바꾸는 시도 큰 호응 '상업적 메시지를 유머로'
'뉴트로로 매출 선풍 ' 공동 브랜드 된 해태, 기업 간 협력 필요

  • 기사입력 2024.05.27 08:00
  • 최종수정 2024.06.05 17:50
  • 기자명 박재항

더피알 = 박재항 | 만우절이 한국 마케팅 업계에서 웬만하면 꼭 지켜야 할 기념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매년 만우절을 맞이하여 뭔가 기발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외국 기업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국 기업은 말이나 글로 발표하는 식의 농담이 주류를 이루는 데 반해 한국 기업은 아예 제품 자체를 장난의 소재로 삼았다가, 진지하게 새로운 개발까지 이어지는 적극적인 마케팅 상황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5년 6월 29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 앞에서 해태제과 모델들이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여행상품권 등 다양한 선물을 제공하는 '해태와 하(夏)하하! 쿨(COOL)하게 떠나자!' 이벤트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뉴시스

이름을 바꾸거나 한정판에 티저(Teaser)까지

몇 년 전부터 식음료 상품의 브랜드 네임이나 모양 등을 만우절을 맞이해 살짝 바꾸는 방식이 유행이었다. 빙그레에서 기존 아이스크림 모양을 바꿔 네모난 비비빅과 둥그런 메로나를 만우절에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해태아이스크림의 바밤바는 이름을 바꾼 ‘배뱀배’와 ‘벼볌벼’를 2022년과 2023년 만우절에 연달아 선보였다. 배뱀배는 밤맛을 배맛으로 바꿔서 출시하여 2022년 바밤바 총 매출의 10% 이상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빙그레 제공

반올림피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로보소 피자’를 만우절 당일 하루 동안 한정 판매했다. ‘로보소 피자’는 반올림피자의 인기 도우 ‘소보로 도우’를 활용한 만우절 제품으로, 도우 부분과 피자 부분이 바뀌어 있는 형태다. 눈치 챘겠지만 그래서 이름도 ‘소보로’를 거꾸로 했다. 작년에도 같은 이벤트를 진행한 반올림피자는 올해 가맹점까지 판매 범위를 넓혀 큰 호응을 받았다.

대부분의 만우절 상품은 특이한 맛을 내는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경향이 강했다.

빙그레는 2021년 만우절 붕어싸만코에 불닭소스를 첨가해 매운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인 '멘붕어싸만코'로 변신시켰다고 밝혔다. 워낙 맵거나 맛이 있어서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하여 '멘붕'과 '붕어싸만코'를 합성해 이름을 붙였다. “불닭소스의 스모키하고 매운맛과 붕어싸만코의 통팥 시럽, 아이스크림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빙그레 측은 자랑했지만, 만우절 해프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빙그레 더위사냥은 타우린 1000mg을 함유하고 에너지 드링크에서 느낄 수 있는 청량하고 새콤한 맛으로 변신하여 이름도 ‘졸음사냥’으로 바꾸어 출시했지만, 이 역시 한정판에 그쳤다.

제품으로 출시하지는 않았지만 가상 옥외광고처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과자계 대표 기업인 롯데웰푸드에서는 대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설레임, 크런키, 돼지바 등 총 6종의 아이스크림 제품에 마라맛을 첨가하고 이름을 ‘헐레임’, ‘흐렁키’, ‘몽헬’, ‘돼히바’ 등으로 바꾼 후 “가장 원하는 마라맛을 댓글로 남겨달라”며 SNS에 바꾼 포장과 함께 업로드했다.

롯데웰푸드의 경쟁사인 해태제과에서도 만우절 한정으로 이름을 바꾼 제품들을 내놓았다. ‘오예스’의 ‘ㅇ’을 모두 ‘ㅁ’으로 바꾸어 ‘모몌스’로, 초코바 ‘자유시간’은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살짝 바꾸어 ‘쉬는시간’으로, ‘칸츄리콘’은 아예 반대 낱말인 ‘시티콘’으로 선보였다.

이들은 한정판으로 정말 장난 같았는데, 진짜 제대로 내놓은 제품도 있었다.

사진=해태제과 인스타그램 캡처

올해 만우절을 앞두고 신호탄 역할을 하며 색다른 마케팅을 펼친 기업이 있다. 한정판 신제품이란 점은 위와 같았지만 방식이 조금 달랐다. 바로 공차의 펄볶이였다. 공차의 밀크티 위에 매운 떡볶이나 마라를 작은 받침 위에 얹어주었다. 매운 것을 먹고 달고 부드러운 공차 음료를 맛보라는 뜻이었다.

펄볶이를 만우절 기념으로 내고, 4월 1일부터 14일까지 한시적으로 판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SNS에 시식 후기가 올라와서 알아보니 3월 말 홍대점, 명동점, 서울대점 등에서 펄볶이 파일럿 판매를 진행했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맛봤다는 자부심이 담긴 후기들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전국 판매점의 판매 개시일인 만우절 당일 공차 매장의 위치와 영업시간 등을 묻는 게시물이 많았다. 요컨대 미국 슈퍼볼 경기 중계에 광고를 집행하는 기업들이 경기 전, 심하면 한 달 전부터SNS나 티저 광고를 하듯이 만우절 전에 사전 마케팅을 전개한 것이다.

삼행시에서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2022년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배우 박성웅이 출연해 바밤바 삼행시 빌런으로 등극하며 화제가 되었다. 어떤 바 타입 아이스크림 이름으로 운을 떼어도 끝은 바밤바로 귀결되는, 아래와 같은 바밤바 삼행시는 2010년을 전후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바 : 바밤바, 밤 : 밤이 들어 있는, 바 : 바밤바

-죠 : 죠스바, 스 : 스윽 꺼내보니, 바 : 바밤바

-누 : 누가바, 가 : 가만 보니, 바 : 바밤바

-스 : 스크류바, 크 : 크림이 들어 있는, 류 : 유형의, 바 : 바밤바

-수 : 수박바, 박 : 박 터지게 맛있는, 바 : 바밤바

-캔 : 캔디바, 디 : 디게 맛있는, 바 : 바밤바

바밤바 삼행시가 화제가 되면서 배우 박성웅은 시모나와 바밤바를 함께 알리는 코믹한 광고 영상에도 출연했다. 이 영상 역시 화제가 되어 ‘2023 대한민국광고대상’ 온라인영상 단편 부문 대상과 ‘서울영상광고제 2023’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어 시모나와 바밤바를 영상에서만 함께 묶지 말고 실제로 합친 하이브리드 아이스크림을 내달라는 요청에 부응하여, 올해 만우절에 박성웅이 출연한 영상과 함께 실제로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사진=빙그레 제공

사실 시모나와 바밤바를 합친 아이스크림은 고객의 요구라는 같은 이유로 2023년 10월에 출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문제는 두 제품의 이름에서 앞 철자만 딴 ‘시밤바’란 상품명이었다. 욕설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공개되자마자 구설수에 올랐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 모르겠지만 그 즈음의 대표이사 교체 사유로까지 언급되었다.

결국 두 상품의 전체 이름을 합쳐서 길게 쓴 시모나바밤바란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올해 만우절은 광고 영상을 공개하며 한정판이 아닌 정식 상품 반열에 올랐다는 걸 알리는 무대가 되었다.

만우절 마케팅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 농담을 자유롭게 할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에 상업적인 메시지라도 유머로 희석시켜 전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주는 경향이 있다. 기념일 마케팅이 그렇지만 오래된 상품의 분위기를 살짝 바꾸고, 브랜드의 분위기를 살짝 바꿔보고, 이름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배맛 바밤바나 펄볶이처럼 기발한 신상품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혹시나 문제가 되고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만우절에 해본 장난이나 농담으로 슬쩍 넘길 수 있다.

열렬한 호응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유통하려는데, 정식 출시한다하면 사람들이 차갑게 돌아설 수도 있다. 한때의 놀이로 여기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나타난다. 시모나바밤바의 경우 수업 시간에 만난 대학생 다수가 진짜 나온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 편의점에 들러 찾으니 아이스크림 박스에는 없고, 점원이 ‘진짜 나온 것이냐’고 되묻는다.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캐러멜에서 부도까지

올해를 포함해 최근 3~4년간 만우절 마케팅에 가장 진심이었던 국내 브랜드는 ‘해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해태’라는 브랜드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광고의 한 축을 담당하며 숱한 명작을 남겼다.

1950년대에 영양제처럼 건강을 위한 식품으로 캐러멜을 판 것을 시작으로, ‘단것’ 자체가 귀하기 짝이 없었던 1960년대의 드롭프스, 풍선껌 등을 거쳐 1970년대 불멸의 CM송과 카피로 남은 ‘12시에 만나요’의 부라보콘,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의 아카시아껌, ‘흔들어주세요’의 써니텐까지 해태는 제과와 음료를 대표하는 전설의 광고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1976년 5월 송출된, 당시 톱스타로 꼽힌 신일룡·정윤희 배우가 출연한 해태 부라보콘 TV 광고. 

해태의 광고를 담당한 코래드는 오길비&매더와의 적극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취급액 이상의 실력과 무게를 인정받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1982년에 출범하면서 해태그룹은 호남을 연고지로 하는 타이거스 구단을 소유하게 된다. 타이거스는 프로야구 출범 두 번째 해인 1983년 우승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1986년에서 1989년까지의 4연패를 포함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코리안시리즈를 제패한다. 문자 그대로 ‘왕조'(王朝)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성적을 내는데도 희한하게 해태그룹은 다른 구단들의 모그룹 대비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빈약한 상태로 비춰졌다. 대출을 받아 사업다각화로 치닫던 시절이었는데, 워낙 먹는 것에 익숙했던 브랜드라 그런지 해태건설이나 해태전자의 기업명과 그 이름을 단 아파트나 게임기는 어색하기만 했다.

외환위기가 현실이 되었던 1997년 가을 코리안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스가 우승한 지 일주일 후인 11월 1일 해태그룹의 주력 기업인 해태제과가 부도 처리되었다.

채권관리단이 경영을 맡고 해태 브랜드는 표류하는 양상을 띠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절대 독재자였던 해태 타이거스 왕조도 김응용 감독의 ‘동열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라는 넋두리처럼 선수들을 팔아 근근이 연명하다가, 2001년 하반기에 기아자동차로 인수되며 과거의 역사로 편입된다.

해태제과 역시 2001년 법정관리 체제로 들어갔다가, 2005년 크라운제과에 합병된다. 당시 매출로 해태제과는 제과음료에서 2위였지만 4위에 매각된 것이다.

기업은 다르지만 브랜드는 하나

크라운그룹에 인수되었지만 해태제과가 법인으로 존속하고, 크라운과 별도로 해태라는 브랜드를 여전히 앞세우고 있다. 그만큼 해태라는 브랜드 자체의 파워가 있었다. 무엇보다 틈새 분야를 대표하며 아성을 구축한 품목들이 있었고, 축적된 경험을 가진 뛰어난 연구개발자들이 있었다.

홈런볼은 오리온 초코파이와 비슷한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맛동산이나 에이스도 직접 경쟁자가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거기에 허니버터칩 같이 한때는 웃돈을 주고 오픈런을 해야 하는 신제품까지 뒤를 받쳤다.

게다가 올해 예기치 않은 히트작이 나왔으니, 바로 밤양갱이다. 장기하가 만들고 비비(BB)가 노래한 '밤양갱'의 히트로 연양갱까지 매출 선풍이 일었다. 옛날 입맛에 맞춘 디저트나 과자들의 복고 유행과 제대로 합이 맞았다.

4월 14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인디오에서 열린 ‘2024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트 페스티벌’에 참석해 '밤양갱'과 '슈가 러시' 등을 선보인 가수 비비. AP/뉴시스 

이와 함께 크라운해태그룹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까지 새삼 조명되고 있다. 해태제과의 브랜드 톤앤드매너(T&M)를 이런 뉴트로적인 방향으로 잡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밤양갱 노래가 사회현상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양갱 아이스크림이 나와야 하지 않냐는 소리도 나왔다. 여기에는 현실 장애물이 있다.

크라운해태그룹에서 2020년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부문만 떼어 빙그레에 매각했다. 그러니까 연양갱과 시모나는 둘 다 ‘해태’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지만, 별개의 기업에서 나오는 것이다. 양갱 아이스크림이 나오려면 두 기업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제조를 위해서는 굿즈나 포장에 이름 새기는 이상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해태는 일종의 공동 브랜드다. 다른 형태의 협력 양상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이 글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빙그레 역시 어느 누구보다 만우절에 진심이다. 그리고 빙그레우스를 비롯해 자신만의 차별화한 유머 코드를 담은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빙그레와 박성웅 배우 같은 실제 인간 캐릭터를 위주의 해태로 이원화해 두 유머의 세계를 아이스크림 얼음 위에서 펼칠 수도 있겠다.

거기에 복고의 맛을 살리는 해태의 제과가 어우러지면 해태라는 브랜드의 넓이와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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