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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를 선물해주세요”라는 호소의 의미

[김민지 기자의 Next 헬스컴] 소아과 오픈런·응급실 뺑뺑이가 드러낸 소아 의료 인프라 위기

인구소멸지역, 깊은 고민, 곡성군 ‘주 2회 방문 진료’ 전문의도 겨우 섭외해
일본 7만원·호주 29만원 진료수가, 한국 1만5천원…당국 지원책은 생색 수준
올해부터 시행되는 필수 의료 정책 제도 실효성에도 의문…깊은 대화 필요해

  • 기사입력 2024.01.29 08:00
  • 최종수정 2024.02.02 14:38
  • 기자명 김민지 기자
곡성군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하는 민관협력 지정기부사업 홈페이지
곡성군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하는 민관협력 지정기부사업 홈페이지 캡처

더피알=김민지 기자 |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전남 곡성군에서 1월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모금 캠페인이다. 소아과를 ‘선물’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필수 의료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의 부족 사태가 절실히 드러나는 문구다.

전국에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은 56곳이고, 곡성군도 소아과 의원이 없는 곳 중 하나다.

곡성군 석곡면의 한 가족의 일화가 그 사정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어린 세 남매를 돌보는 김모 씨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소아과는 50km가량 떨어진 광주에 위치해있다. 1시간 가량 차를 몰아 도착하면 1시간 넘게 대기 줄이 이어지곤 한다.

곡성군은 소아 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해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 모금액은 8000만 원으로, 타 지역의 소아과 전문의가 주 2회 곡성에 방문해 진료할 수 있도록 구축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모금액은 2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곡성군은 이 캠페인을 진행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소아과 전문의 확보였다고 밝혔다. 소아과 의원 구축 자체는 어려운 상황, 주 2회 전문의를 초빙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여러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첨단메디케어의원 소아청소년과가 방문 진료를 약속했다.

곡성군 관계자는 “소아과 전문의가 쉬는 날에 오는 것이라 가능한 전문의를 어렵게 모셨다”고 말했다.

'곡성군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캠페인. 사진=곡성군
'곡성군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캠페인. 사진=곡성군

한숨 쉬는 지방 “아이들이 살기 좋은 환경 만들고 싶다”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해 거액(?)의 출생장려금까지 주는 지역들의 근심이 더 커졌다. 소아과 부재도 젊은 층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곡성군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면서 “아이들은 수시로 아프고 또 급박하게 병원에 갈 일이 많은데 아이 키우기 어려운 현재 여건을 개선하고자 사업을 추진했다”고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캠페인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곡성군 내 만 15세 이하 아이들 수는 1795명, 타 지역에 비해 적은 어린이 인구 수로 소아과 의원은 사실상 들어서기 어렵다.

비단 군소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상북도의 경우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 소아청소년과 외래진료를 받을 수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이 한 개도 없는 상황이다. 경상북도의 만 15세 이하 어린이는 29만 여명, 수도권을 제외하고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다음으로 어린이 수가 많다.

경북도는 야간·휴일 소아응급실 운영에 15억 원을 쓸 예정이라고 24일 밝히면서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지역이 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저출생 극복과도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곡성군 유튜브

‘수련비용·소아 초진 비용 지원책’으로 소아과 전문의 늘까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소아 인프라 구축에 힘쓰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4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선발 결과에서는 소아청소년과 206명 모집 중 54명만 선발해 확보율이 17.6%에 그쳤다. 비수도권 지역은 85명 중 10명만 확보해 11.8%였다.

임현택 대한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우리나라 소아과 수가는 1만5000원은 일본 7만 원, 호주 29만 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면서 “수가 현실화뿐만 아니라 민형사 책임에서 의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의료사고특례법 등도 적극 검토해야 소아청소년과 인력 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달라지는 보건복지 정책 제도로 소아 전공의·전임의에게 수련보조수당을 매월 100만 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6세 미만 소아 환자 초진 진료 시 3500원(1세 미만 7000원)을 지원하겠다는 소아 진료 정책 가산금을 도입했지만 의료계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임현택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소아과 초진만 3500원 더 줘서 한 달에 세후 40만 원쯤 수입 느는 정책 수가를 소아과 대책으로 들고 나왔다. 고맙기 그지없다. 인턴 여러분 소아과 배 터지니 많이들 지원하라”고 비꼬아 비판했다.

정부의 지원대책에 대해 대한아동병원협회도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내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올해보다 더 떨어지고, 전문의들의 탈소청과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아의료붕괴는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라는 기자회견을 열어 소청과 폐과를 선언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평일 야간 시간대나 휴일(토·일·공휴일)에 소아 경증 환자의 외래진료를 하는 달빛어린이병원 또한 2027년까지 100개소로 늘린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달빛어린이병원이 한 곳도 없었던 울산시는 소아청소년과에 달빛어린이병원 신청을 독려해 왔으나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울산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여러 대기업의 주요 생산시설이 있는 대도시인데도 상황이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울산시는 올해 1월 울주군에 첫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에 성공하면서 소아 진료 공백을 줄이게 됐다.

을주군 보건소 관계자는 “보조금을 지급받아도 인건비 등 계약 타산을 맞추기 어려웠다”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4명 이상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최근 그 조건이 삭제되면서 지정이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타 지자체 달빛어린이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 자체도 적은 데다 야간 늦게까지 진료를 하고자 하는 의사를 초빙하기는 더 어렵다”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기타 인력까지 고려했을 때 그 비용 문제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운영 지원을 위해 오는 3월부터 총 4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개소당 운영비 지원금은 연간 최소 3000만원에서 최대 4억3200만원으로 시간에 비례해 지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정도의 지원으로는 지금 당면한 소아과 대란에 숨통을 트일 수 없다는 현장의 반응을 접하면, 보건당국과 의료계 사이에 더 진지한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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