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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은 것만 믿는 ‘脫진실 시대’ 넘기

[건강한 헬스컴 ②] 가짜뉴스를 막아낼 수 있는 방패는 어디에

어느 아침, 고등학생 아들이 쏟아낸 ‘요즘 뉴스’ 불신감을 접하고 생긴 고민들
“함부로 쓴 글은 흉기”라던 선배와 “펜으로 이룬 죄에 더 큰 벌” 주장한 김훈

  • 기사입력 2023.09.07 08:00
  • 기자명 김태연

더피알=김태연 | 얼마 전 고등학생 아들이 아침 식탁에서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요즘 뉴스는 정말 믿을 수가 없어. 특히 다이어트 기사는 100% 다 거짓이라고 봐야해. 그리고 원전뉴스도 거의 다 가짜일거야”

순간, 커뮤니케이션업에 종사하는 엄마 입장에서 듣고 있기가 내심 불편했다. 고작 십 수 년 살아본 녀석이 뉴스에 대해 왜 저렇게 큰 불신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득해야 저 깊은 불신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을까. 한참 고민스러웠다.

사실 필자가 1996년 첫 기자생활을 할 때만 해도 뉴스의 신뢰도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훨씬 더 탄탄하고 든든했다. 지하철 무가지 1단 기사도 함부로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 작은 뉴스 하나로 어느 기업의 주가와 매출이, 누군가의 인생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기자시절 한 선배기자에게 술자리 말미에 늘 듣던 말은, “함부로 쓰지마라, 너에게 그 글은 다시 흉기로 돌아온다”였다.

올 1월,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한국인 2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28%로 지난해에 비해 2%나 더 낮아졌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뉴스를 잘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조사대상 46개국 중 41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뉴스의 신뢰도가 이렇게 낮아지고 있는 데엔 바로 ‘가짜뉴스(Fake News)’가 크게 한몫 했다. 가짜뉴스는 재정적 또는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이 아닌, 거짓뉴스’라 할 수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Digital News Report 2023' 중 한국의 미디어 신뢰지수 부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Digital News Report 2023' 중 한국 미디어 신뢰지수 부분

2010년대 이후 SNS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더욱 급증한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흥미와 본능을 자극하여 시선을 끄는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과 질적으로 다르다.

가짜뉴스는 단순한 실수로 인한 오보나 해석의 차이, 광고수익을 유도하기 위한 선정적인 뉴스에서 더 나아가 어떠한 ‘의도성’을 갖고 프레임을 만들어 허위사실을 조작, 유포해 개인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조직을 붕괴시킬 수 있어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여기에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가짜뉴스가 만연되면,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국제학회에서 ‘오보에 대한 정정 기사의 효과’를 연구한 발표가 있었다.

시민 506명에게 코로나 사망률 및 백신에 관한 가짜뉴스와 사실에 근거한 뉴스를 각각 보여준 다음 가짜뉴스를 ‘정확하다’고 인식한 이들에게 해당 뉴스를 검증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팩트체크 기사 링크를 제시하는 연구였다.

43%가 이를 무시하고 처음의 가짜뉴스를 계속 신뢰하는 현상을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자신의 견해 내지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확증편향성’에 기인한다.

그러면 우리는 무분별한 ‘가짜뉴스’의 확산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AI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가짜뉴스의 형태와 수법도 나날이 진화되고 있어 그 결과는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결국 이렇게 ‘가짜’가 ‘진실’이 되고 ‘진실’이 ‘가짜’가 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사실을 왜곡, 호도해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야기할 것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거짓말’, ‘허위정보’에 대한 일말의 죄의식조차 점점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심각성으로 국내에도 가짜뉴스 퇴치를 위한 규제마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올해 5월 초부터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은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언론재단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 소개 페이지
언론재단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 소개 페이지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년도 가짜뉴스 대응 관련 예산을 68%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방통위는 또한 가짜뉴스 자정기능 강화를 위해 네이버·다음 등 플랫폼과 민간자율심의기구 등과 협력·소통 시스템을 확립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다만 가짜뉴스 유포로 인한 개인과 사회의 피해, 또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작성자 또는 유포자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을 등에 입고 추진되던 이른바 ‘가짜뉴스 방지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에 부딪혀 입법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 마련에 앞서, 우리는 허위조작정보, 가짜뉴스가 지속 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가짜뉴스의 지속 생산은 가짜뉴스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소비되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개개인이 출처나 사실 확인이 어려운 의심스러운 정보를 지속 생산하는 채널은 소비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의심스러운 뉴스는 스스로 출처를 확인하기 전에 각자의 SNS에서 다시 재확산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의심스러운 뉴스를 접할 때, 이를 알아차리고 그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청소년 때부터 길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도성’을 갖고 허위뉴스를 퍼트리는 미디어에 대해서는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신문기자 출신이자 소설 ‘칼의 노래’ 작가인 김훈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펜으로 이루어진 죄가, 칼로 이루어진 죄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의 말처럼, 허위사실 유포는 명백한 범죄이며, 그것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법과 제도적인 손해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더 강하게 형성된다면 중단됐던 입법 논의도 다시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를 막아낼 수 있는 커다란 방패는 지금, ‘우리 손’에 꽉 쥐여져 있다.

김태연 앨리슨파트너스코리아 대표의 ‘건강한 헬스컴’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헬스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극적 고민을 중심에 두고, 국민과 함께 하는 이슈·위기관리, 공중과의 호의적 관계 형성을 위한 건강정책 PR 등의 문제를 뒤집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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