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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 정말 ‘팩트’가 문제일까?

조작-왜곡-오보-편향-불편감까지 ‘가짜뉴스’ 판단 기준 제각각

  • 기사입력 2023.07.05 08:00
  • 최종수정 2024.07.05 19:44
  • 기자명 김경탁 기자

‘상평통보’는 像評通報(이미지 상, 평판할 평, 소통할 통, 알릴 보) 한자를 결합해 만든 코너 이름으로, Image, Brand, Communication, News 등 ‘더피알’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모두 내포한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폴리티팩트 창립자인 빌 아데어 교수가 6월 27일 언론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재단 제공
폴리티팩트 창립자인 빌 아데어 교수가 6월 27일 언론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언론재단 제공

장면1. ‘가짜뉴스’는 오염된 용어

“미국의 언론인이나 팩트체커들은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짜뉴스 vs 팩트체크 : 끝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6월 2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의 KPF언론포럼 발제자인 빌 아데어(Bill Adair) 듀크대 교수는 ‘가짜뉴스’ 용어에 대한 사용 거부를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기간 본인 마음에 안드는 언론 기사에 이 표현을 사용하면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는 용어가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과정에 가짜뉴스의 수혜자였으면서 집권 후에는 언론사가 보도한 비판적 뉴스들에 가짜뉴스 낙인을 찍었다.

빌 아데어가 창립한 팩트체크 플랫폼 폴리티팩트(PolitiFact)는 2008년 미국 대선 기간 750가지가 넘는 정치적 주장들을 검증해 ‘진실’과 ‘수사적 포장’을 분리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운 공을 인정받아 2009년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영광의 해로부터 8년 뒤, ‘가짜뉴스’를 창과 방패 양면으로 사용한 정치인 트럼프가 등장했다. 폴리티팩트는 “트럼프 후보 발언의 70%가 거짓에 가깝다”고 검증 내용을 발표했지만 대선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굴욕적 패배를 당한 셈이다.

트럼프 집권 첫해인 2017년부터 미국의 언론미디어 학계에서는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이 쏟아져나왔다.(조지타운대 Danah Boyd 객원교수, 샌디에고대 Caroline Jack 조교수,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Ethan Zuckerman 부교수 등)

국내에선 한국외대 김민정 교수가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소식지 <신문윤리> 2018년 11월호 기고 ‘가짜뉴스에서 벗어나기’에서 오염된 ‘가짜뉴스’ 용어의 폐기를 주장했다. 그해 말 정부에서도 ‘가짜뉴스’ 사용을 지양하고, 대신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지만 사회적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장면2. ‘팩트’와 ‘뉴스’는 대체 뭘까

“한 익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모 회사가 관련된 이러저러한 사연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이러저러한 반응을 보였다”라는 구조의 기사를 포탈 사이트 뉴스검색에서 쉽게 접하게 된다. 심지어 제목에 ‘단독’ 표기를 단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기사 텍스트에 해당 기업을 익명 처리하면서 첨부 사진에서는 이름을 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사연이 실제 일어난 일이고 사진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굳이 확인(팩트체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기에 사연이 올라왔다는 것 자체는 ‘팩트’ 맞지 않냐고 언론사와 작성 기자는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해당 사연이 진짜인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개별 언론사 입장에서 비합리적인 일이다. A언론사가 팩트를 체크해서 보도하면 B, C, D, E, F …등등의 언론사가 "A언론에 따르면"이라고 베껴쓰는데 1분도 걸리지 않고, 심지어 인용까지 익명으로 처리해 "모 언론에 따르면"이라고 쓰거나 아예 인용 없이 베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언론계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기준을 세우고 어떻게 판단하는가와 별개로, 언론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2019년 조사를 보면 일반 시민들이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을 나누는 인식 기준은 상당히 까다롭다.(‘뉴스 아님’ 응답 비율=사설·칼럼 57.2%, 유명인 SNS 보도 71.3%, 언론보도 활용한 유튜브·팟캐스트 등 87.2% 등)

‘가짜뉴스’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엄해서 89.6%가 동의한 ‘사실 확인 부족으로 생긴 오보’를 비롯해 선정적 제목의 낚시성 기사(87.2%), 짜깁기·동일 내용 반복 게재 기사(86.8%), SNS 등의 내용을 사실 확인 없이 전재한 기사(85.9%), 한쪽 입장만 혹은 전체 사건의 일부만 전하는 편파적 기사(81.4%), 광고성 기사(75.3%)까지 모두 ‘가짜뉴스’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기사중 상당수를 '가짜뉴스'라고 인식한다.
한국인들은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기사중 상당수를 '가짜뉴스'라고 인식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가짜뉴스를 양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규제는 쉽지 않고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의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는다. 클릭 수는 돈이 되고 정치권은 언론 앞에 약해지기 때문이다.

언론재단이 행사 제목에서 ‘가짜뉴스’의 대척점으로 상정한 ‘팩트체크’가 한국에서 대중화된 것은 2017년이다. 19대 대선으로 여러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팩트체크를 실시한 영향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도 그해 출범했고 그해부터 네이버는 SNU팩트체크센터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팩트체크’ 역시 대중화되자마자 오염됐다. 2017년 대선 당시 양당 캠프에서 상대 후보의 발언을 검증하겠다며 실시간으로 팩트체크 결과를 기자들에게 전달했는데, 그 내용이 검증이라기보다 정치적 비난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SNU팩트체크센터가 국제팩트체킹연맹(IFCN)과 공동개최한 ‘글로벌 팩트10’의 첫날 행사에서 이경원 SBS 기자는 “현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가장 핵심적 변수는 정치 양극화라는 사회적 환경”이라며 정치권이 앞장서 팩트체크를 오염시킨 장면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장면3. 프레임의 문제

“일산화이수소(DHMO)는 공업용 용매로 사용될 만큼 강한 용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용해 능력은 이온 결합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물질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런 특성은 공업적으로는 유용하지만, 사용한 후의 처리가 매우 어려워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일산화이수소는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생분해되지 않는다.”

물(H2O)을 일산화이수소(DHMO)라는 어려워 보이는 명칭으로 지칭해 눈속임하는 유명한 농담의 서두다.

Dihydrogen monoxide(약칭 DHMO)의 위험성을 다룬 인포그래픽
DiHydrogen MonOxide(약칭 DHMO)의 위험성을 다룬 인포그래픽

‘팩트체크’는 ‘팩트’가 사실과 맞는지 ‘체크’한다는 뜻이다. 틀린 팩트를 검증하고 걸러내는 것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팩트에 집중하는 게 과연 맞는지,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미디어연구센터 조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조작부터 왜곡, 오보, 편향, 불편감까지 대중이 어떤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판단하거나 아무 판단 없이 비난할 수 있는 기준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한 일산화이수소 농담의 특징은 서술된 내용 중에 ‘팩트’가 아닌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팩트’만으로도 사람들을 속이고 공포에 빠뜨릴 수 있다. 팩트보다 프레임이 더 문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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