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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약 열풍, 한국인 특화·패치제로 승부수

[김민지 기자의 Next 헬스컴] 제약사들의 미래 먹거리① ‘비만 치료제’

2030년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 1천억 달러(136조원) 전망
노보 노디스크 ‘위고비’로 승승장구…K-제약사도 참전
국내 선두주자 한미,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 구축
대웅·디앤디파마텍·일동 등 제형 변경한 제품 개발중

  • 기사입력 2024.05.27 09:55
  • 최종수정 2024.06.07 08:08
  • 기자명 김민지 기자

[편집자주]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지만, 전통적 바이오·제약산업에서 덜 중요한 분야로 취급되던 비만·탈모, 건강기능식품 등의 비중이 경제규모와 생활수준 상승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치열하게 진행중인 이 분야 글로벌 경쟁에 도전장을 낸 국내 바이오·제약회사들이 있습니다. 성장과 생존의 버팀목이 될 미래 먹거리이자 캐시카우 신사업으로 판단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는 겁니다. 국내 제약사들의 도전과 성과를 짚어보고 더 주목할만한 분야는 뭐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더피알=김민지 기자 | 외국 제약사의 비만약이 높은 매출을 거두면서, 국내 제약사들도 비만치료제 개발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1분기 매출이 653억 4900만 크로네(한화 약 13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4%나 증가했다며 특히 이 기간 비만치료제 매출이 42%나 늘었고 5월 2일 밝혔다. 이 회사의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불리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 매출은 93억 7700만 크로네(약 1조 9000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고비는 당뇨치료제로도 쓰이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유사체 성분으로, 비만 환자의 체중을 15% 감량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와 미국계 인플루언서인 킴 카다시안 등 유명인사들이 위고비를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더 주목받았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 역시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의 판매 호조 등으로 전 세계 제약사 중 시가총액(2024년 3월 기준 약 7228억 달러, 한화 약 960조 원)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일라이릴리에 대해 비만치료제와 당뇨치료제가 성장 동력이라고 평가하며 “세계 제약사 중 최초로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인 열풍에 노보 노디스크는 현재 위고비 출시 예정 국가 중 한국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비만율이 38%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점에 주목하며 시장 확대를 계획하는 것이다.

외국계 제약사의 기세에 국내 제약사도 비만치료제의 신속한 시장 진출을 위해 분발하고 있다. ‘국내 퍼스트무버’라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까지 바라보며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황순재 가천대 의예과 연구교수는 “국내 대형 제약사 중심으로 비만치료제 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비만이 심각한 주요 만성 난치성 질환으로 여겨지고 특히 팬데믹 이후 비만 환자가 더 늘었기에 글로벌 시장도 함께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뇨 치료제 용량만 바꿔 비만약으로 재탄생

GLP-1 유사체가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2018년 해당 성분의 약물이 2형 당뇨병에서 비만으로 첫 허가를 받으면서다.

GLP-1은 음식물 섭취 시, 혈당 조절을 위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체내 호르몬의 일종이다. 이러한 원리로 GLP-1 작용제는 당뇨병 치료약으로 개발했는데, 사용 환자에게서 식욕 억제와 체중 감소 효과가 보고됐다.

노보 노디스크는 2018년 제2형 당뇨병 치료제인 ‘빅토자’(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를 성분이 동일하고 용법·용량을 다르게 해서 비만치료제 ‘삭센다’로 탈바꿈했다. 2021년에는 매일 투여해야 하는 빅토자와 달리 주 1회 주사하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의약품 위고비를 출시했다.

비만치료제 중에는 GLP-1 계열 약물 외에도 지방흡수를 억제하거나 식욕 중추에 작용해 음식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약물들이 시판되고 있다.

이 중 GLP-1 유사체는 다양한 대사성 질환에도 효과를 보이는 것이 장점이다. 위고비는 미국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 환자의 심혈관 위험 감소 적응증을 허가받았고, 일라이릴리는 임상 3상 시험에서 젭바운드가 수면무호흡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구역·구토와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 있어 제약사들은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를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 사진=뉴시스

한미약품, ‘한국인 특화’ ‘근 손실 최소화’로 차별화 노려

현재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의 양강 체제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 제약사의 비만치료제가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성능은 물론이고, 가격과 마케팅 등에서 차별화가 필요하다. 이에 제약사들은 제형을 달리하거나 ‘한국인 특화’와 같은 특이점을 내세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GLP-1 계열 비만약 개발에 나선 곳은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H.O.P(Hanmi Obesity Pipeline)’라는 이름의 비만 관리 프로젝트로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5종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임상 3상에 돌입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라는 타이틀로 이름을 알렸다. 현존하는 GLP-1 계열 해외 비만치료제는 상대적으로 BMI 수치가 높은 서양인 환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인은 서양인에 비해 내장 지방으로 인한 비만이 많으며,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 또한 서양인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에 아시아인에 특화한 비만치료제의 연구와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 3상 시험에서 임상 대상자 420명을 모두 내국인으로 진행해 한국인 맞춤 GLP-1 비만약을 개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약품의 H.O.P(Hanmi Obesity Pipeline) 프로젝트. 사진=한미약품

또 한미약품은 신약후보물질 HM15275을 ‘근손실 최소화’ 비만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HM15275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와 위 억제 펩타이드(GIP), 글루카곤(GCG)의 수용체 작용에 관여한다. 25% 이상의 체중 감량뿐 아니라 삼중작용으로 GLP-1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으로 꼽혔던 근 손실, 구역·구토 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일라이릴리의 새로운 비만치료제 ‘레타트루타이드’ 또한 임상 2상에서 25% 이상의 체중 감량이라는 높은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근육 손실과 관련된 연구 결과는 발표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한미약품이 신약 출시에 성공 시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일 전망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근육 손실을 최소화하는 기전은 삼중활성 간 밸런스를 최적화하는 게 가능하다”며 “체중 감량 효과 또한 25% 이상으로 기대돼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계열 내 최고 신약)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사제 보다 경구약·패치제 개발 중인 K-제약사들

다른 국내 제약사들은 약물 투여가 편한 제형으로 개발에 나섰다. 현재 시장에 출시된 GLP-1 계열 제제는 비만약 외에도 2형 당뇨 치료제까지 6종이 있는데, 노보 노디스크의 2형 당뇨 치료제 ‘리벨서스’(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만이 경구제제이고 이외의 제품은 모두 피하주사 방식이다.

경구 투여 형식이 적었던 것은 주사제로 쓰이는 GLP-1 유사체가 위장관에서 잘 분해되고 흡수가 덜 일어나기 때문이다.

GLP-1 유사체는 펩타이드 의약품, 즉 아미노산 중합체로 이뤄져 있는데, 펩타이드 의약품은 위장관에서 약물 흡수율이 떨어지고 단백분해효소에 의한 안정성이 낮다. 노보 노디스크의 리벨서스의 경우 흡수 증강제 역할을 하는 염을 붙여 경구제제로 개발됐고 2형 당뇨 적응증으로만 쓰이고 있다.

황 교수는 “주사 형태의 치료제는 환자에게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편리한 제형으로 바꾸어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고 있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투여가 편한 제형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제형 변경으로 시장 침투 전략을 세웠다.

대웅제약은 패치형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GLP-1 유사체를 탑재한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인데, 팔·복부 등 각질층이 얇은 부위에 주 1회 붙이는 방식이다.

대웅제약 측은 “피하주사제는 냉장보관에 직접 주사로 불편함이 있고, 경구제 비만치료제는 생체이용률이 1% 정도로 흡수율이 매우 낮고 구토, 메스꺼움, 설사 등 부작용이 있다”고 타 제형의 단점과 비교했다.

해당 패치제의 임상 1상은 내년 초 시작될 예정이며, 오는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 중인 마이크로니들 패치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진=대웅제약

디앤디파마텍은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인데, 경구 흡수율을 높일 수 있는 자체 플랫폼 기술 ‘오랄링크(ORALINK)’로 체내 안전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화합물의 작용기를 변경해 약물 반감기를 증대시키고, 약물 투과도를 높이는 투과 촉진제를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기존 경구용 펩타이드 의약품의 한계를 극복했다.

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는 올해 4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글견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에서는 리벨서스의 흡수율(0.05~0.6%)보다 10배 가량의(5%) 흡수율을 보였다”며 GLP-1 비만약의 경구제 개발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외에도 대원제약은 패치제, 일동제약은 경구용 제제를, 유한양행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GLP-1 비만치료제 개발하고 있다.

제형을 변경하면 약물의 용출 속도와 체내 흡수율 등이 달라져 안정성과 효능이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제형 변경 개발을 뒷받쳐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황 교수는 “제형을 바꿔 개발하는 것은, 제형을 변경하여 적용하고자 하는 연구진들의 노하우 및 숙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서 “최근 국내에서 알테오젠이라는 바이오텍 회사가, 제형 변경 기술 플랫폼에 대해 대형 기술 수출을 이루어낸 사례를 비추어볼 때 제형 관련 국내 기술 수준에서 개발이 어렵지 않다고 사료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제형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며 “제형 변경으로 인한 체내 독성이 없고 치료 효능이 비슷하다면 제품들이 빠르게 개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골드만삭스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2030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집계에서 세계 비만인구는 2022년 10억3800만명에 이르렀고, 세계비만연맹은 2020년 14%였던 세계 비만유병률이 2035년 25%(19억 명)로 증가할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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