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신아연 |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 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꿈에서조차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최근 어느 의학학회에 강연자로 초대된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지선 교수의 모두(冒頭) 발언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교수를 만난 것 자체가 내게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간 만난다더니 한번은 이 교수를 직접 보리라 벼르던 참이었다. 학회와의 인연은 다른 기회에 말하기로 하자.
작정하고 강연장 맨 앞자리에 앉았다. 텔레비전과 유튜브 등에서 수없이 봐왔던 사람이지만 내 눈으로 명확한 실체를 보기 위해서였다.
내게 이 교수는 역경과 고난, 극복과 성장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 그를 막상 만나니 본인의 표현대로 대단한 의지를 가진 영웅의 이미지는 고사하고 자그마한 체구의 평범하고 수줍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또 얼마나 자분자분한지.
2000년 7월 30일,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후 오빠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자에 의한 6중 추돌 사고로 온몸에 불이 붙어 전신의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다. 특히 얼굴과 손에 집중된 화상으로 40번이 넘는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손가락은 뼈가 녹아내려 결국 마디를 절단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이었지만 학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23세에 떠난 학교를 23년 후 모교 교수가 되어 돌아왔다. 보스톤대, 컬럼비아대, UCLA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였다.
중화상의 고통만 고통이 아니지 않냐는 이 교수의 말이 가슴에 닿는 위로가 됐다. 내 고통도 고통 축에 끼일 수 있다는 뜻이니. 우리 마음의 보호막이 찢어지는 극한의 경험을 하게 될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치유와 극복을 넘어 성장으로까지 가는 세 가지 길이 있단다.
첫째, 생각을 되새김질할 것. 즉, 내게 일어난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피하지 않고 여러 각도로 되새김질하면서 그 일이 내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지 의미 부여를 해나가는 것이다.
둘째, 감정을 표현할 것. 즉, 안전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고통스러운 마음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괜찮은 척 숨기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지지를 얻을 것. 즉, 가족, 친구, 공동체의 진심 어린 관심과 지지, 따뜻한 배려와 응원, 편견 없는 존중과 신뢰가 있을 때 씻을 수 없는 상흔과 처한 현실을 보다 잘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