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백화점 업계가 유명 해외 식음료 브랜드 유치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롯데·신세계·현대 등 국내 백화점 업계 ‘빅3’가 들여온 카페와 베이커리 브랜드는 소비 둔화 상황에서도 좋아하는 데엔 돈 안 아낄 VIP와 MZ 고객들을 불러 모으는 중이다.
고급스러운 오프라인 공간으로 고객을 유혹하는 행보는 △점포 대형화 △입점 브랜드 고급화 △식음매장 및 문화예술 콘텐츠 강화 등으로 집객력을 극대화하려는 백화점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은 7월 17일 서울 중구 명동 본점에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중 하나라 불리는 ‘인텔리젠시아’ 매장을 열었고, 롯데백화점은 지난 1일 서울 청담동에 커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싱가포르의 ‘바샤커피’(Bacha Coffee) 매장을 국내 최초로 오픈했으며, 더현대 서울은 6일 벨기에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Godiva) 베이커리 매장을 전 세계 두 번째로 열며 집객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명품 매출 성장률 둔화에 대한 해법으로 고객 체류 시간 증대를 목표로 한 식음료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보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올해 2분기 매출이 모두 늘어난 현재, 과연 이들이 자신 있게 선보인 식음료 브랜드들이 가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곳인지, 기자가 직접 가서 확인해보았다.
더피알=김병주 기자 | ‘태운 콩즙 끝판왕’ 한국 상륙…인기 메뉴는 ‘1910’, ‘밀라노 모닝’
8월 20일 화요일 오후 2시, 한화갤러리아 백화점을 지나 청담동 명품거리 샤넬 매장 맞은편에 있는 바샤커피 플래그십 스토어에 도착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9월 싱가포르 V3고메그룹으로부터 국내 프랜차이즈 및 유통권을 단독으로 확보한 계약을 체결한 뒤 8월 1일 동북아시아 최초로 개장한 매장이다.
바샤커피는 현재 한국을 포함 세계 11개국에 진출해있으며,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24번째 매장이다.
바샤커피는 1910년부터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영업 중인 유명 카페 ‘다 엘 바샤 팰리스’(Dar el Basha Palace)에서 착안해 V3고메그룹이 2019년에 론칭한 브랜드다.
V3고메그룹 산하인 티 브랜드 TWG가 2007년에 시작되었음에도 싱가포르 상공회의소 설립년도를 의미하는 숫자 ‘1837’를 제품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장 입구와 제품, 메뉴판에 곳곳에는 ‘1910’이라는 숫자가 적혀 역사가 있는 브랜드라는 느낌을 준다.
바샤커피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화려함’이다. 매장 내외부로 모로코를 연상시키는 주홍색 인테리어와 무늬, 커피 추출 기물과 잔들, 세계 35개국에서 온 200종류의 원두와 제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시향도 자유롭게 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소비자들의 이목을 끈 것은 역시 비싼 가격이다. 인기 있는 가향 커피 드랩백의 겨우 12개 기준으로 3만9000원 정도의 가격을, 그랑크뤼(자체적으로 판단한 우수 품질 기준) 원두 250g은 20만원부터 120만원까지 책정되었다.
가향 블렌딩과 싱글오리진 커피 한 잔의 테이크아웃 가격은 1만1000원(매장 2층 이용 시 1만6000원), 파인 싱글오리진 테이크아웃은 1만8000원~20만원(매장 2층 이용 시 3만원~30만원) 정도다.
물론 고객들이 모두 초고가 커피를 찾는 건 아니었다. 가장 비싼 브라질 ‘파라이소 골드’(Paraiso Gold, 350ml 매장 가격 48만 원)의 경우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직원도 메뉴에서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판매보단 화제성이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두는 모두 싱가포르 본사에서 로스팅해 1주일 내로 항공으로 한국에 공수해온다.
여성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가향커피의 경우 원두 로스팅 시 에센스 오일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향을 더하며, 총 70종의 가향 원두를 팔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1910 블렌딩’은 야생 딸기와 크리미한 향미의 인위성이 강한 편이라, 한국에서는 초콜릿이나 빵과 잘 어울리는 ‘밀라노 모닝’ 커피가 제일 인기 있다고 한다.
디카페인 원두 중에 가장 인기 있다는 ‘미드나이트 선’은 베트남 사향 커피(루왁)과 유사한 향이 뚜렷한 게 특징이었다. 베이커리 메뉴 중에서는 크로아상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하루 평균 500명 방문, 매장 이용은 30분~1시간 대기…“지방에서 왔어요”
매장 바깥에는 대기줄이 없었지만, 실내에는 식사가 가능한 2층을 이용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테이크아웃을 취급하는 매장 1층 곳곳에는 하얀 옷에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도와주고 있었다.
매장 이용 시간과 2층 대기시간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평일에는 오후 5시까지, 주말에는 5시 반까지 영업을 하고 있어서 오늘 마지막 주문은 4시 반까지 받습니다. 평소에 점심시간쯤이 제일 붐비는데요, 지금(오후 2~3시)은 피크 시간이 지나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하시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층이 25석인데, 이용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서요.”
이왕 온 김에 2층을 이용해보려고 줄을 섰다. 외국인 고객이나 남자 고객들도 가끔 보였지만 주로 여성 고객들이 많은 편이었으며, 젊은 손님 외에 4050세대로 보이는 분들도 많았다. 뒤에 서계시다가 사진을 찍어달라던 손님 한 분은 “여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다른 일도 볼 겸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1층 직원께 여쭤보자 2층 회전율이 빠르진 않아서 테이크아웃 손님이 대다수라고 밝히며 “1, 2층 합쳐서 하루에 500명 정도 오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주변 명품 매장을 들렀다가 오는 분들이 많다고도 덧붙였다.
2층 매장 내에선 주문에서 결제까지 모두 앉은 자리에서 손을 들고 서빙 직원을 부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유럽 카페를 이용하는 느낌을 주려고 한 걸까,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주문 혼선이 생길 수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닫힌 2층 공간은 손님이 많아 조용하지는 않았다.
바샤커피는 모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추출하며, 테이크아웃 시 종이받침에 샹티(Chantilly, 거품이 일게 만든 생크림)크림과 슈거스틱이 제공된다. 원하면 뺄 수도 있는데 가격은 똑같다.
2층 매장 이용 시에도 슈거스틱이 원당으로 교체되는 것을 제하면 부드럽게 산미를 줄여주는 샹티크림이 꼭 같이 나온다. 라테 메뉴가 없기도 하거니와 고객 스스로 양을 조절해가며 배리에이션을 즐기라는 취지다.
커피의 테이스팅 노트(향미)와 맛, 배전(로스팅 정도) 등을 적어놓은 메뉴판은 다른 카페 브랜드와 달리 다소 감성적이고 설명으로 구성됐다. 더 직관적인 표현으로 소비자들의 이해를 도모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많은 메뉴 중 무엇이 내 입맛에 맞는지 알려면 자리에서 매니저를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메뉴 설명을 도와준 매니저는 커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보였다. 평소 어떤 종류의 커피를 마시는지, 오늘 어느 정도의 바디감(입 안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정도)과 산미를 원하는지 세세한 질문을 받아 ‘쓰리 볼케이노’ 블렌드(매장가 1만6000원)를 추천받았다.
선명·강렬한 향미, 호불호 탈지언정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팅’ 콘텐츠로 경험할 만
25분 가까이 기다려 커피가 도착했다. 한 주전자는 3컵 분량(350ml)인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마실 정도라 양이 많진 않다.
견과류를 곁들인 몰트 맛과 감귤류의 끝맛이라 설명해놓았는데, 맛보다는 향과 부드러움이 두드러졌다. 배전이 아주 높은 건 아니지만 산미는 적었고 다소 묵직하면서도 균형 잡힌 바디감과 일말의 스모키함, 카카오닙스에서 날법한 쌉쌀한 향이 가볍게 스쳤다.
특히 유분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샹티크림을 풀어 넣자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유분이 떠서 결국 원당과 크림은 따로 떠먹기로 했다. 바닐라 입자가 보이는 샹티크림은 크림보단 우유에 가까운 맛과 조직력이라 매우 쉽게 풀어졌다. 물어본 결과 유분이 가장 적은 메뉴 ‘마운트 케냐’ 블렌딩이라고 한다.
마셔본 결과 든 생각은 ‘한 번쯤 올만한 곳이다’였다.
물론 그 전부터 온라인 판매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 아무도 안 시켜본 메뉴가 있다”는 직원의 말마따나 이 정도로 가향에 주력하면서도 원두 제품군이 넓은 커피 브랜드는 흔치 않다.
또 아메리카노나 라테 위주의 커피가 아닌 다른 커피를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재미있는 ‘커피 여행’ 포인트로 소구될 수 있다고 본다.
결제를 위해 서버를 부르자 “L포인트 적립 하시나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바샤커피는 롯데백화점의 미션인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Life Style Curator)에 맞춰 고객의 삶에 커피 문화를 제안한다는 관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라인업과 커피룸·부티크 등도 그러한 경험의 관점에서 본다면 납득이 간다.
특히 올해 초 신설한 롯데백화점 콘텐츠부문 내 전담 팀에서 바샤커피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롯데백화점이 단순히 커피사업 진출이나 F&B 확대의 의미보다는 고객에게 보다 차별화된 가치와 콘텐츠를 전하기 위해 운영권을 확보했다는 의미이다.
롯데백화점이 다양한 채널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및 기업간(B2B) 시장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바샤커피의 차별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