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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이건희가 내다본 2023년의 대한민국

[K-기업가정신 포럼] 이병철·이건희 회장에게 오늘의 답을 묻다 (上)

“경영이란 ‘보이지 않는 걸 보는 것’…최소한 다섯 번은 ‘왜?’ 질문해야”
“원인 분석 후 대화…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 필요하다”

  • 기사입력 2023.10.05 08:00
  • 최종수정 2023.10.20 09:39
  • 기자명 김경탁 기자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서명 새로운 신화창조
2004년 반도체 30년 기념서명 "새로운 신화창조"

“지금 우리는 정신, 환경, 제도, 시간의 위기라는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그중에서도 정신적 위기가 제일 큰 문제다. 기업가는 투자의욕을, 근로자들은 근로의욕을 잃고 있다.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사회의 리더들은 앞장서서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구심점 없이 표류하고 있다.”

2023년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말 같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에서 “두뇌산업으로 모든 걸 바꿔야한다”며 덧붙인 말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습니다.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우리는 왜 반도체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으로부터는 40년입니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훨씬 빨라진 오늘, 대한민국은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변하는 국가로 세계의 선망을 받고 있지만, 국가적·국민적 역동성과 에너지가 고갈된 분위기는 사회를 짓누르고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민의를 모으며 통합하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에게 오늘의 답을 묻다”라는 조찬포럼 주제에 시선이 머무른 이유입니다.

한·인도네시아 경영학회(KIMA) 주관으로 9월 13일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열린 ‘KBS경제세미나와 함께 하는 K-기업가정신포럼’의 강연자는 허문명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이었습니다.

더피알은 ‘오늘의 답’을 찾기 위해 허 부회장의 이날 강연과 그가 썼던 칼럼, 이건희 회장 저서와 발언자료 등을 토대로 ‘경제사상가 이건희’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되짚어봤습니다. [편집자주]

허문명 한국기자협회 부회장(동아일보 부국장)이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라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문명 부국장이 '경제사상가 이건희'라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왜 ‘경제사상가’인가

이건희 회장 서거 직후인 2020년 11월(12월호 게재)부터 월간지 ‘신동아’에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연재를 시작한 허문명 부국장은 서거 1주기에 『경제사상가 이건희』, 2주기에 『이건희 반도체 전쟁』을 냈다.

허 부국장은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한 1부로 시작해 2부 ‘왜 경제사상가인가’, 3부 ‘이건희 상상력’이라는 테마로 이날 강연을 진행했다. 호암 이병철 창업주의 이야기를 다룬 [K기업가 정신의 뿌리 “잘 사는게 최고의 복수”] 부분은 시간관계로 인해 준비된 자료 소개로 갈무리됐다.

이건희 회장을 ‘사상가’라고 네이밍한 이유에 대해 허 부회장은 그 성과 뒤에 있던 30년 이상을 앞서간 시대 인식을 이야기했다. 더불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상상력에 더해 그런 사상을 회사 너머 온 나라로 확산시켜 함께 가고자했던 의지와 노력도 사상가적 면모로 꼽힌다.

그가 “불량은 암”이라고 외치며 ‘구매의 예술화’와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대내외적으로 주창한 것은 1993년부터지만, 전직 삼성맨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이런 주장을 내부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그룹 부회장에 선임되고 2년 후인 1981년부터다.

허 부국장이 저서와 강연 등에서 인용한 이 회장의 30년 전 어록 중에는 2023년 현재의 시선으로 볼 때 ‘너무 당연한 상식’이 된 것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물론 30년 뒤에도 유효할 것으로 보이는 생명력을 가진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고객만족 경영은 고객의 개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개성 경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개성이 ‘10인 1색’에서 ‘10인 10색’, 다시 ‘1인 10색’으로 발전해왔다는 분석은 이 분석이 나왔던 1990년대보다 2023년 현재에 오히려 더 유효하다.

특히 “이제 단순히 재화를 써서 없애주는 존재로서의 소비자(Consumer)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개개인의 취향까지도 맞춰 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서의 고객(Customer) 개념이 자리잡게 됐다”는 말은 요즘 더피알이 주목하고 있는 ‘데이터 기반 고객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희 회장은 ‘1인 10색의 시대’를 “한 사람의 고객이 마치 카멜레온처럼 시간과 장소에 따라 소비스타일을 바꾸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2020년대 경영계 화두중 하나인 ‘초개인화’ 트렌드를 미리 읽은 것이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업의 개념’을 직시하는 방법론

“보험업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증권업은 상담을 하는 것이 핵심”이란 말은 발언 시점인 1980년대 후반(회장 취임 직후)에는 업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었지만, 금융권의 마이데이터가 일반화된 2023년 현재에는 유효하지 않다. ‘이건희 어록’의 문장 구절구절이 아닌 그 방법론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1997년 발간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이건희 회장은 경영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업의 개념’, 즉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은 그가 자주 이야기하고 질문했던 화두다.

사업을 영위하는 기본 목적과 정신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거기 필요한 핵심기술과 제품특성, 유통구조상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 후에는 관련 법규와 제도, 기술 및 소비자 의식 등 환경과 여건의 변화를 제때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1994년 2월 28일 비즈니스위크 표지
1994년 2월 28일 비즈니스위크 표지

그는 “경영이든 일상사든 문제가 생기면, 최소한 다섯 번 정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 원인을 분석한 후 대화로 풀어야 한다“며 “모든 환경이 초음속에 비견될 정도로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동일한 사물을 보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당시 입체적 사고의 예로 든 것은 나무 한 그루의 가치가 목재로 쓸 때는 몇 십 만원에 지나지 않지만 숲을 이루면 홍수방지, 공해방지, 녹지제공 등 여러 효과를 거두게 된다는 이야기와 영화를 감상할 때도 주인공이 아닌 여러 입장에 이입해서 보기였다.

조연에 이입해 보면 주연에 몰입할 때와 전혀 색다른 느낌을 받게 되며, 등장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느끼게 되고, 나아가 감독, 카메라맨의 자리에서까지 두루 생각하면서 보면 또 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무척 힘들고 바쁘지만, 습관으로 굳어지면 입체적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사고의 틀’이 만들어지고, 음악을 들을 때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또 일을 할 때에도 새로운 차원에 눈이 떠지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중심으로 보고 자기 가치에 의존해 생각하는 습관을 바꿔, 한 차원만 돌려 상대방 처지를 생각하면 모든 게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10월 5일 경제 사상가 이건희 “다리가 없더라도 건너가야 한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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