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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미비’ 묻자 ‘과징금 폭탄’ 돌려준 환경부

[블랙박스 in THE PR] 현대오일뱅크, 역대 최대 과징금 보도의 내막
외부와 차단된 관로로 연결된 계열회사 설비간 처리수 재활용 자진신고
대부분 언론들, 자극적 제목 달아 소식 전하면서 구체적 상황은 외면해

  • 기사입력 2023.01.06 17:27
  • 최종수정 2023.12.13 16:49
  • 기자명 김경탁 기자

더피알=김경탁 기자 | HD현대(舊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가 환경관련법 위반 관련 역대 최고액인 1509억원의 과징금을 환경부로부터 사전통지 받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 회사가 2021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4496억원 3분의 1에 달하는 거액이어서 충격적인 뉴스다.

이와 관련 HD현대는 “자회사인 현대오일뱅크는 환경부의 과징금에 대해 사전통지만 받은 상태로서 과징금 부과여부 및 액수가 확정되지 않았으며, 1509억원으로 과징금을 특정하기 어렵다. 관련기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향후 관련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내 재공시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언론들은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의 경우 세부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대오일뱅크 측 입장을 나름 충실하게 전했지만 거의 모든 언론이 현대오일뱅크 측 입장은 단편적 문장 한 두 개로 압축했다.

최초보도로부터 몇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의 전후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제목’의 기사들이 몇몇 나오기는 했지만, 초반에는 클릭 수를 높여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자극적·선정적인 제목도 일부 눈에 띄었다.

네이버 뉴스 관련기사에 달린 댓글들. 단편적인 뉴스만 보면 현대오일뱅크는 천하의 악당으로 느껴질 수 있다.
네이버 뉴스 관련기사에 달린 댓글들. 단편적인 뉴스 제목만 보면 현대오일뱅크는 천하의 악당으로 느껴질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환경부로부터 과징금 사전통지를 받은 해당 ‘사건’의 개요를 우선 살펴봤다.

현대오일뱅크는 2019년 10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서 나오는 하루 950t의 폐수를 외부와 차단된 관로를 통해 인근 자회사인 현대OCI 공장으로 보냈고, 현대OCI는 이 물을 공업용수로 사용한 후 폐수처리장에서 배출허용기준에 맞게 처리해 최종배출했다.

이에 대해 현대오일뱅크는 “대산지역의 만성적인 가뭄에 따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업용수를 사용한 후 바로 폐수 처리하지 않고 불순물을 제거해(처리수) 공업용수로 재활용해왔다”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가 사용한 처리수는 외부와 차단된 관로를 통해 설비에서 설비로 이송되고, 재활용 후에는 방지시설에서 적법한 기준에 따라 최종 폐수로 방류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어떠한 환경오염이나 인적·물적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리수 재활용’은 UOP, KBR 등 해외 특허법인과 국제표준화기구(IPIECA)에서도 권장하는 방법으로 수많은 국내외 정유공장에서도 일반적으로 적용하고 있고, 동일 사업장 내에서 처리수를 재활용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외부와 차단된 관로로 연결된 각기 다른 계열회사의 설비들을 ‘동일 사업장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법 규정이나 대법원의 확립된 해석 내지 판단이 없다는데서 시작됐다. ‘입법미비’ 상태라는 말이다.

대산공장 내 계열회사 설비 간 처리수 재활용이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현대오일뱅크는 이에 대해 환경부에 자진신고했고, 1년 이상 이어진 환경부 조사 및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째 이어진 가뭄 속에서 물자원을 아끼기 위해 공업용수를 재활용하고, 이와 관련한 법 규정 미비 사실을 자발적으로 관계기관에 알려 제도개선을 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기업의 ‘선한 의도’가 역대 최대 과징금 통지라는 보복(?)으로 돌아왔다.

이에 대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처리수 재활용 방안은 상습적인 가뭄으로 물 부족이 심각한 대산지역에서 공장의 안정적 가동을 위해 불가피한 방안이었다”며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물 사용량과 폐수 발생량을 줄인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상 하나의 공장임에도 처리수를 재활용하는 설비의 소유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경영에 차질을 초래하는 조치가 부과되는 경우, 추후 적절한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국토교통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국토교통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한편 환경부 측은 관련 보도가 나가고 한나절이 지나도록 과징금 사전 통지와 관련한 추가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검찰의 오래된 악습을 연상하게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피의사실공표라는 범법행위를 공공연하게 하는 식으로 공격대상에 상처를 입히고 반사이익을 얻는 식의 정치행위를 벌이는 구태적 행위를 환경부가 따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있었던 수출전략회의와 올해 1월 3일 열린 환경부 업무 보고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경부도 규제만 하는 부처가 아니라 환경산업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당부해왔다. 환경산업을 키우라는 이야기가 환경 관련 과징금으로 세수를 늘리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의 “공부해라”는 잔소리는 귀에 안들어와도, 쓰레기를 길에 함부로 버리는 등의 행동을 보면 쉽게 따라하게 되는 것이 원래 인간의 습성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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