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강미혜 기자]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
몇 년 전 유행했던 노래가사를 들려주고픈 이가 생겼습니다. 이름도 낯선 들쥐 레밍의 존재감을 알려주신 분, 김학철 충북도의원입니다.
외유 논란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김 의원이 사과인듯 사과아닌 사과같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해 다시 한 번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만 하루도 더 지나 해당 글을 거론하는 건 (매거진 마감 탓에) 그 어마무시한 분량을 미처 알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사과문 낭독’이 사회지도층이라 불리는 인사들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되어가는 가운데에서도 단연코 유니크한 자세를 보여주었기에, 다소 뒤늦게나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의원의 사과문은 1만2000자(혹자는 1만3000자라 함) A4 11장 분량에 달한다고 합니다.
실화냐 싶어 글을 직접 찾아보니 스크롤 압박감에 도저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자필글씨도 아닌 텍스트만으로 김 의원의 억울한 감정이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 의원의 글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말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시작됩니다.
그리고 크게크게 10여번 정도 스크롤을 내리면 “다 용서했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용서해주시고, 문재인 대통령 용서해 주십시다”고 통큰(?) 제안을 한 뒤 “명 짧은 놈 우리 아버지보다는 5년을 더 살았습니다. 무수한 욕과 비난을 얻어먹었으니 더 살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고 괴로워하다 “여러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사상 최악의 물난리 속에서 국외연수를 강행해 비판 받는 상황에 난 데 없이 전현직 대통령의 용서를 구하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한 후 사죄로 급결론을 내버리니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 스테디셀러 책이라 할 수 있는 <쿨하게 사과하라>를 보면 사과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표현이 나옵니다.
“미안해, 하지만”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의견 불일치를 나타내기 위한 쓰는 표현이다. 리더십의 언어로서 사과를 할 때는 구차한 변명의 냄새를 풍기는 몹쓸 접속사다.
“만약 그랬다면, 사과할게”
조건부 사과이다. 하지만 사과를 받는 입장에서는 ‘책임의 회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수가 있었습니다”
수동태 사과이다. 사과의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책임 인정’을 회피하려는 비겁한 태도가 내포돼 있다.
김 의원의 이번 사죄(라 읽고 변명이라 말하는) 글은 그 방대함을 다 훑어보지 않더라도 이 세 가지 표현을 충실히 녹여내고 있는 듯합니다.
비단 김 의원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는 사과하는 법을 잘 모르는 ‘공분유발자’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 ‘밥하는 아줌마’ 발언으로 막말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언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만 해도 사과의 말이 더 말을 낳는 미숙함을 보여준 바 있죠.
핑계 없는 무덤 없고 처녀가 아이를 배도 할 말은 있다지만,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국민 다수의 감정을 거스르는 언행을 했다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반성부터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어쨌든 이번 논란 덕분에 무명의 지자체 의원은 단 며칠 만에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하는데 전화위복으로 ‘노이즈 마케팅’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네요. 혹시 압니까. 보수의 화신으로 어느 날 갑자기 중앙정치 무대에 데뷔하게 될는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못된 발언이었다면 사과합니다. 쿨하지 못한 들쥐의 생각이라 여겨주시고 다 용서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