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서영길 기자] 행정안전부가 핵폭발 상황을 가정해 내놓은 국민행동요령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로 불안이 고조된 상황에서 제시된 ‘핵무기 공격 시 대처법’은 일반 대중의 인식과 큰 괴리를 나타내며 온라인 상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흡사 메르스 사태 당시 “낙타를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연상된다. ▷관련기사: 메르스 대책, ‘소통법’부터 배워야
행안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는 ‘핵무기로 공격받을 때 알고 있다면 대처할 수 있어요’라는 제목의 브로셔(매뉴얼)가 올라와 있다.
간단한 그림과 함께 ▲경보가 울리면 빨리 지하철역, 터널, 지하상가 등 지하시설로 대피할 것 ▲핵폭탄이 터지면 반대 방향으로 엎드린 후 배가 바닥에 닿지 않게 입을 벌리고 눈과 귀를 막을 것 ▲핵폭발 이후에는 방사능과 낙진을 피해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 안으로 대피하거나 지하 깊은 곳으로 대피할 것 등의 행동 요령이 담겼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긴 해도 내용 자체가 크게 문제될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에 쓰여 있는 ▲핵폭발 이후 이동할 때는 우의나 우산을 활용하라는 문구는 실소가 나올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가 내놓는 답변도 황당하다. 위기관리지원과의 김태윤 주무관은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서울에서 핵이 터졌다고 하면 부산에서는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살아 있다면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대처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방사능과 낙진을 어떻게 우의나 우산으로 막느냐는 물음에도 김 주무관은 “아무 보호 장비 없이 나가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답하며 “관련 전문가의 감수를 통해 만든 매뉴얼이다.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반 상식에 비춰봤을 때 핵 폭발과 우의·우산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조합이지만, 위기관리 전문가 또한 해당 매뉴얼 자체엔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국민들의 현실적인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매뉴얼들은 비슷한 내용이다. 너무 단순화 돼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 대표는 “국민들이 정부의 가이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각 가정 단위부터 재난이나 위기상황에 대한 연습을 스스로 해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